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보이아 가문 (문단 편집) === 귀국 이후 현황(2002~현재) === [[2002년]] 11월에 의회 표결로 입국 금지가 해제된 후 사보이아 가문 구성원 대부분은 이탈리아로 귀국하여 이탈리아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2002년 이전부터 이미 이탈리아 국내 거주가 가능했다.] 현 수장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1937년생)와 그 아들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1972년생)는 [[2008년]] 1월에 이탈리아에 정착했다. 하지만 사보이아 가문이 이탈리아 귀국을 허락받는 등 현 이탈리아 정부와 정치적으로 화해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보이아 가문에 대한 이탈리아 내 여론은 대체로 '''매우 부정적'''이다. 심하면 왜 귀국을 받아줬냐며 2002년 당시 귀국을 허용한 이탈리아 정부를 비난하는 의견도 있는가 하면 가문의 문장조차 혐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에도 이것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정확히 말하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그 손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에 대한 평가인데 이는 사보이아 가문의 대(對) [[파시즘]] 협력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그들이 보여준 [[무사안일]]·[[무능]]함에 기인한다. 게다가 그 손자이자 현 수장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의 비행(非行), [[망언]], [[극우]] 성향 등도 여론의 비호감 원인 중 하나이다. 여론은 사보이아 가문 직계 후손들을 거의 퇴물 취급한다. 현 사보이아 가문의 수장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는 41살이던 [[1978년]] 자가용 요트에서 고무보트가 없어지자 화풀이로 옆 보트에서 잠자고 있던 19살의 [[독일인]] 청년 덕 해머[* 다만 덕 해머의 아버지인 [[https://en.wikipedia.org/wiki/Ryke_Geerd_Hamer|라이크 기어트 해머]](1935~2017)는 유럽에서도 미친 사기꾼으로 악명높은 유사의학 사이비 의사였다. 한마디로 독일판 [[허현회]]인데 암을 자신만의 의료 방법으로 고칠 수 있다면서, 추종자의 어린 딸아이를 하마터면 죽일뻔했다가 [[1995년]] 구속되었다. 오스트리아 소녀인 올리비아 필하르(Olivia Pilhar)는 병원으로 옮겨져 항암치료를 받아 겨우 살아남아 지금도 살아있다. 반대로 라이크 해머는 구속되고 부모도 징역형을 살았으며 부모는 양육권이 박탈당했다. 의사 자격도 박탈당함에도 이런 방법을 고집하여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지에 이런 엉터리 진료소를 차려 돈벌다가 싸그리 폐쇄당하고 추방당해 [[노르웨이]]에서 살다가 죽었다. 게다가 라이크 해머는 자신의 사이비 치료방법이 게르만 민족 우월적인 방법이라며, 이걸 [[유대인]]들이 음해하고 있다면서 [[유대인 음모론]]을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이 때문에 딸인 비르기트 해머는 아버지나, 오빠를 죽인 비토리오라는 놈이나 똑같다며 절연하고 혐오했다. 비토리오나 라이크 해머나 유대인 음모론을 주장하고 다닌 건 매한가지였고 심지어 라이크 해머는 자기 아들을 죽인 비토리오를 이해한다는 개막장 짓이나 보였으니, 그의 아내와 딸마저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작자가 증오스러울 것이었다.]를 총으로 [[살해]]했는데도 고작 6개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덕 해머를 직접적으로 조준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과실치사 및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과실치사 혐의는 인정되지 않고 불법 무기 소지만 유죄로 인정되어 6개월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물론 덕 해머의 어머니와 누이동생 비르기트가 소송을 제기하여 엄청난 돈을 보상해야 했다. 게다가, 2006년에서야 당시 항구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영상을 구해서 사람죽이고 좋아라 웃는 비토리오의 낯짝이 공개되어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도 완전히 [[사이코패스]]라고 다시 비난이 터졌다. 이럼에도, 이걸 보도한 신문과 유족을 고소했다가 패소당했고 비토리오를 비난하는 책자를 낸 모델 겸 언론인인 [[https://en.wikipedia.org/wiki/Beatrice_Borromeo|베아트리체 보로메오]][* 참고로 이 사람은 사보이아 가문 후손들을 상당히 혐오하긴 하지만 군주제 혐오자는 아니다. 세계 유명 왕족들과 귀족들과도 친하고 무려 세계적인 여배우이자 [[모나코]] 공비였던 '''[[그레이스 켈리]]'''의 장녀 [[카롤린 그리말디]]의 차남 [[https://en.wikipedia.org/wiki/Pierre_Casiraghi|피에르 카시라기]](즉, 그레이스 켈리의 외손자)와 결혼했다. 사실 보로메오 본인부터가 완전 평민은 아니고, 역사가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보로메오 백작가의 딸로, 이 가문 출신의 유명 인물로 [[카를로 보로메오]]가 있다. 그런 사람에게조차 저런 소리를 들을 정도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의 인성을 알 수 있다.]도 고소했으나 역시 패소했다. [[2015년]]에 보로메오는 [[SNS]]에서 '''"저 막되먹은 사보이아 가문 쓰레기들이 패소하여 우울해 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고 디스했을 정도. 비토리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마약 흡입과 스페인에서 아메데오 공작 폭행 등의 비행과 온갖 유태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망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노인이 된 후에도 2006년 마피아 관련 인신매매 주모자 혐의로 [[긴급체포]]를 당했다. 또한 "무솔리니 정권의 무엇이 문제였냐?"면서 [[베니토 무솔리니]]와 [[파시즘]] 정권을 두둔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 정치적으로도 빈축을 샀다.---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는 거지?--- --[[시메온 2세|동갑내기 고종사촌]]과 하는 짓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시메온 2세는 자신이 왕국 말기에 왕세자, 국왕이던 시절에 모국 불가리아가 나치 독일군에게 부역했음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정작 그 파시즘 정권 때문에 왕조가 무너졌고 심지어 안되겠다 싶던 왕실에서 무솔리니를 토사구팽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 2차대전 직후에 비슷한 입장에 놓였던 [[일본 황실]]의 경우, 이기지도 못할 전쟁을 벌여 제위를 위태롭게 만든 우익세력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태평양 전쟁 후 현재까지 극우 세력과 완전히 척을 진 상태이다. 물론 이쪽은 현재도 재위중인 관계로 여론에 민감한 이유도 있겠지만.] 현 사보이아 왕실 수장 아들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또한 한때 마약중독자였으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논란이 될 수도 있는 정치성 발언[* 증조할아버지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판테온]]에 묻혀야 마땅하다는 발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파시즘 집권을 방조하다 못해 협력했고 제2차 세계 대전 때 보여주었던 추태를 고려한다면 빈축을 살만한 발언이었다.]을 해 빈축을 산 적이 있다. 게다가, 이 사람도 사람을 쏴죽인 자기 아버지를 옹호하여 덕 해머의 누이동생인 비르기트에게 대놓고 무솔리니처럼 총살당해야 했다는 분노어린 비난을 들었다. 위에 서술한 애비와 이 에마누엘레까지 덩달아 비난한 언론인 베아트리체 보로메오와 에마누엘레는 SNS에서 한참동안 서로 분노어린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에 비하면 큰 논란거리가 되는 인물은 아니며, 이탈리아에서는 평판이 나쁘지만 [[이탈리아 요리]]를 세계에 홍보할 목적으로 [[미국]]에서 이탈리아 요리 푸드코트 사업을 벌이는 등 외국에서의 평판은 좋은 편이다. [[2007년]] 두 부자는 이탈리아 정부에 자기 조상들의 재산을 반환하라면서 2억 6000만 [[유로]][* [[한국 원]]으로 3240억원이 넘는다.]를 보상하라는 [[발언]]을 하며 이탈리아 여론의 분노를 샀다. 더군다나 귀국을 허용받기 위해 몰수된 왕실 재산을 포기하겠다는 언급을 이미 한 바가 있었기에 더더욱 분노를 살 만했다. 물론 이탈리아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이에 대해서 당시 이탈리아 여론이 얼마나 사보이아 가문 사람들을 혐오했는지 당시 [[이탈리아 공산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피노 스고비오는 "이탈리아에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사보이아 가문 족속들"이라고 비난했고, 당시 총리실 관계자 또한 "(사보이아 가문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취한 행동을 근거로 그들에게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경고성 발언을 했다. 사보이아 가문 사람들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혐오가 어느 정도냐면 가문에 대한 혐오가 다소 누그러졌다는 [[2020년대]]에도 이탈리아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의 손녀 [[https://en.wikipedia.org/wiki/Princess_Vittoria_of_Savoy|비토리아 디 사보이아(Vittoria di Savoia)]][* 국적과 주요 활동지는 이탈리아지만 어머니를 따라 주로 [[프랑스]]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와는 달리 이탈리아 왕위 요구를 주장하지도 않았는데도 그저 사보이아 가문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https://www.instagram.com/vittoria.disavoia/|SNS]]에서 심한 악플 테러를 받고 있는 정도다. [[2022년]]에 가보를 돌려받으려는 소송을 냈다. [[https://m.yna.co.kr/view/AKR20220126063700009?section=international/all|#]]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결정적 실책과 후손들의 망언으로 인해 현재 사보이아 가문은 이탈리아 내에서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혐오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그나마 유일하게 옹호해주는 극우 [[파시스트]] 세력 내에서도 사보이아 가문에 대한 입장은 차이가 있어서 극우 세력 상당수는 왕정 시절이 아닌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시절을 자신들의 이상으로 삼고 있기에 극우 파시스트 세력의 일부에게만 지지를 받고 있다. 왕실의 보신이 주된 이유이긴 했지만 왕실에서 전쟁 말기에 무솔리니와 [[국가 파시스트당]]을 통수쳤기 때문이다. 현재 사보이아 가문은 이탈리아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고 [[왕정복고]]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당장에 이탈리아의 옆나라이자 전쟁 패전과 민심의 이반으로 왕정이 몰락한 이탈리아와 달리 군부 쿠데타에 의해 왕정이 폐지당한 그리스도 왕정복고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앞선 얘기들을 종합하면 [[이탈리아인|이탈리아 국민]]들이 사보이아 가문을 싫어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베니토 무솔리니]]를 등용하여 [[이탈리아 왕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휘말리게 한 책임. 1. 그런 왕실은 전황이 불리해지니까 무솔리니를 잘라 꼬리자르기를 하고[* 위에서 나왔듯 극우 파시스트조차 대다수가 등을 돌린 이유다.] 사후 수습도 제대로 안 한 채로 국민들을 버리고 자신들만 잽싸게 남쪽으로 도주. 1. 겨우 50년만에 용서하고, 이탈리아 귀국을 허락해줬더니, 돌아온 것은 가문의 '''수장'''들이 2대에 걸쳐 저지른 실책과 망언. 1. 그럼에도 정신 못 차리고 재산 내놓으라는 등의 행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